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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_OK와 멀리건은 일란성 쌍둥이

작성자 dmbh(ip:)

작성일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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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OK와 멀리건은 일란성 쌍둥이





"티샷보다 퍼팅 긴장감이 더 하죠."


"어느 쪽 스트레스가 더 심한가"라는 질문에 지인이 이렇게 답했다. 그래서 티박스에선 멀리건, 그린에서 OK가 있지 않냐며 웃었다. 둘은 일란성 쌍둥인데 이런 점에서 OK가 형이라는 농담도 했다.


20177US여자주니어골프 선수권 준결승 에리카 셰퍼드와 엘리자베스 문(이상 미국)의 연장전.


18홀 매치플레이 연장 첫째 홀에서 셰퍼드가 파로 마무리하고 문은 약 1.2버디 퍼팅를 남겼다. 문의 버디 퍼팅은 왼쪽으로 비켜나가 홀에서 약 15떨어진 곳에 멈췄다.


문이 별 생각 없이 공을 집어든 순간 셰퍼드가 "나는 그 공에 대해 컨시드를 준 적이 없다"며 이의를 제기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결국 경기 위원들이 문에게 1벌타를 부과했고 패배에 몰렸던 세퍼트가 결승에 진출해 우승했다.


사실 15거리면 일반적으로 컨시드가 용인된다. 셰퍼드 문은 "그때 눈을 감고 있었는데 공이 떨어지는 소리가 안 들려 눈을 떠보니 이미 공을 집어들고 있었다""그 상황을 내가 보았다면 당연히 컨시드를 줬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주말골퍼들이 사용하는 ‘OK'는 짧은 거리의 퍼팅을 1타로 마무리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인데 원래 용어는 컨시드(Concede·양보)이다. 굳이 해석하자면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 "오케이, 내가 컨시드해 줄 게!"를 줄여 OK라고 부른다.

 

그린에서 주로 1m 이내 거리를 오케이 존으로 하는데 주말골퍼들은 퍼터 길이 이내에서 허용한다. 프로경기에서는 김미(Gimme)'라는 용어로 통용된다.


주말골퍼들에겐 이 컨시드 거리의 퍼팅이 가장 긴장된다. 공이 핀에서 이보다 멀리 있으면 붙이기만 해도 좋다는 생각이지만 이 거리에서 꼭 한 타로 마무리해야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심리적 압박감이 엄청나게 몰려오기 때문이다. 특히 내기로 스킨스 상금이 잔뜩 쌓였다든지 스트로크 게임 때 한 타로 싹쓸이를 하거나 거꾸로 동반자 모두에게 돈을 지불할 상황이라면 긴장은 극에 달한다.


골퍼 강욱순이 200330퍼트를 놓쳐 결국 미국 퀄리파잉스쿨에 1타 차로 낙방해 PGA 진출에 실패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김인경도 2012년 나비스코챔피언십에서 30퍼팅을 놓쳐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에 실패해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결정적인 순간에 짧은 퍼팅에 실패하면 프로나 아마추어나 일종의 공황장애를 겪죠. 흔히 말하는 입스(Yips)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프로골퍼 김경태의 말이다.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그 날의 실패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퍼팅에 성공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에 사로잡힌다는 것이다.

 

주말골퍼들은 보통 50이내엔 웬만하면 컨시드를 준다. 컨시드를 받고 퍼팅하면 희한하게 잘 들어간다. 심리적으로 아무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동반자들이 컨시드를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치열한 내기 골프가 붙었거나 공이 내리막 옆 경사에 놓였다면 짧은 거리 퍼팅도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컨시드를 주지 않았을 때 당사자 심리 상태가 매우 중요하다. 당연히 컨시드 받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퍼팅해야 한다면 실패 확률이 높다고 한다.

반대로 컨시드를 고대하지 않고 당연히 퍼팅해야 한다고 심리적으로 무장돼 있으면 대부분 성공한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도 반드시 넣을 수 있다고 자기 주문을 하면서 잡념이 개입될 여지를 주지 않으면 짧은 거리 퍼팅도 성공하죠. 빨리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서두르면 실패합니다."


김경태 선수의 조언이다. 아마추어 친선 골프에선 보통 공이 핀에서 1m 이내에 놓이면 컨시드를 준다. 내기가 붙더라도 그립 부분을 뺀 퍼터 길이 이내이면 컨시드를 허용한다.

 

친선이라도 너무 컨시드를 남발하면 게임에 활력은 물론 재미도 없다. 골프는 집중에 따른 긴장감을 맛보는 스포츠다.


그렇다고 날은 덥고 앞 팀은 보이지 않고 뒤 팀은 바짝 붙었는 데도 짧은 거리 컨시드를 끝내 주지 않으면 지루하고 전체 리듬도 깨진다.

 

내기가 붙었을 땐 누가 컨시드를 주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골프 시작 전 룰을 정하기도 하지만 경기진행 중 룰과 상관없이 누군가 무심코 컨시드를 외치는 수가 있다.

이 때 맘속으로 컨시드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동반자가 있어도 선뜻 클레임을 걸지 못한다. 야박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다.

 

계속 돈을 잃고 있어 퍼팅하는 동반자가 실패하면 나는 도약 계기를 맞는데 다른 동반자가 생각없이 컨시드를 외쳐 버리면 억울하다. 나를 골탕 먹이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 처지를 잘 헤아려야 했다.


심하게 말하면 자기는 컨시드를 줘 좋은 사람이 되고 나는 억울하다. 이래서 내기 땐 가장 불리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컨시드 권한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 컨시드 룰을 정해놔도 진행이 밀리거나 덥거나 추우면 속도를 내야 해 약속대로 룰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 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컨시드 하나로 품격이 돋보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수원CC에서 스킨스 게임이 붙었을 때다. 한 번도 상금을 챙기지 못한 연세 드신 분이 후반 파3홀에서 1m 거리의 세 번째 퍼팅을 남겼다.


다른 두 명은 쓰리 온으로 이미 승부에서 멀어졌고 한 사람은 핀에서 80거리 세 번째 퍼팅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선 홀에서 계속 비겨 상금이 많이 쌓인 데다 다른 동반자 세 명이 벌금으로 뱉어낸 금액도 누적돼 그 날의 승부처였다. 결국 그 분은 파 퍼팅을 성공했다.


이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80남은 동반자의 공을 집어들며 컨시드를 주는 게 아닌가. 자기가 1m 퍼팅에 성공했다면 당연히 80퍼팅은 성공하지 않겠느냐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상대방의 실력을 인정해주고 실수에 의존해 이기고 싶지 않겠다는 취지다. 상대방이 퍼팅에 실패하면 전세를 역전하고 상금 순위도 1위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였다.

접대 자리도 아니었다. 금액을 떠나 쉽지 않은 결정이다. 실력 뿐만 아니라 품격이 달라 보여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컨시드 하나에도 경솔함과 품격이 담겨 있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                 

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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